몽유도원도 / 이하석
땅이 없으니 하늘 쪽이라도 개간하는 겐가
산동네에 세들면 옥상에 알루미늄 박스랑 플라스틱 바케츠랑 깡통들부터 늘어놓는다
빈 수프 깡통까지 밑구멍 뚫어 흙 담아놓으면 상치밭 된다
봄엔 복사꽃 두어 송이 갈색 페인트 깡통에서 피어올라 무릉도원이라 불리더니?
높은 지대라 나팔 불기 좋은 곳 아니냔 듯 페트병에서 솟아난 부지런한 나팔꽃 덩굴 옥상 난간 감아올라 여름 알린다
채소들 연일 뜯어내도 흙심 좋아 이내 새로 푸르게 솟아나고, 도꼬마리, 개망초, 속새 씨들 바람길 떠돌다 아무 깡통이나 플라스틱 통들에 왁자지껄 뿌리 내려 수북하니 숲 이룬다
밖은 뜨거워도 옥상 풀숲엔 맹수 고양이족 서식하는 서늘한 어둠이 있어서
대도시 사막 건너온 이들 숨어드는 오아시스라 불린다
저 아랫동네 먼지세상에서 낙타보다 편리한 기계 부리는 이들이 꿈꾸는 것도 흙바람 뚫고 솟은 무릉도원 아니겠는가
그러나 꽃들 구름처럼 피어나는 이 몽유의 높이는
저 아래 사막세계의 현자들은 못 찾겠지
끊임없이 자잘한 꽃 피워 넘보는
아슬아슬한 몽유길이여
옥상 난간 벼랑에 나팔꽃 새순이 내는 위태로운 잔도가 꿈길이어서
산동네 사람들 하늘 향해 떠들어대며 꽃 피는 아침이 늘 그 길로 오신다
- 1948년 경북 고령 출생. 1971년 현대시학 등단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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