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마지막 연인 / 김이듬

폴래폴래 2009. 4. 25. 12:01

 

 

 

            마지막 연인     / 김이듬 

 

 

 

  누가 이 침대를 사가겠지 이게 제일 비싼 가구지 눈물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 마지막 입술 달싹이는 소리 못 듣겠지 나 혼자 더 이상 서두르지 않겠지 읍내까지 약 사러 식료품 사러 달려가지 않겠지 옷가게 유리창에 붙어 서지 않겠지 신발 안에 새똥이 문제되지 않겠지 마당 가득 잡초들이 우거지겠지 네가 내 아빠보다 나이 많은게 문제되지 않겠지 네 말에 난 죽겠지 내 약에 넌 죽겠지 누가 먼저 죽을까 봐 죄의식 가질 리 없고 여기 요양지에서 죽는다 해도 방을 따로 쓰지 않아 밤낮 떨어지지 말고 산책로든 물 뜨러 가는 길이든 내가 끌리는 데로 너도 갈 거지 타자기랑 책상은 같이 쓰고 트렁크는 옷장 위에 창문 아래까지만 상자를 포개놓을게 배달기사가 곁눈질하며 돌아가고 우주에서 우리 둘 뿐 사랑해 죽을 때까지 파산한다 해도 지금은 머리칼 흐트러진 채 돛보다 넓은 치마를 걷어 올린다 배 가운데 온몸을 실어봐 다시 해봐 발바닥을 간질이는 물결이여 그러나 침대 모서리에서 모서리까지 부딪칠 뿐 흘러가지 않는 배가 무슨 소용이람 어떻게 좀 해봐 아무래도 양쪽 책장이 무거운 거야 책 따윈 저리 치워 창턱에 빼곡한 화분들도 밖으로 밀어버린다 널 태워도 날지 않는 꺼지지도 않는 매트리스가 무슨 소용이람 좀 더 미치게 해줘 폭죽 터지는 지옥으로 날 데려가줘 오 당신 맙소사 사랑해 미치도록 사랑하지만 어떻게 매일 사랑하니 당신은 엉엉 울어대다 태연해지지 뻔뻔스러운데다 요구까지 많아 너무 사치스러워 이렇게 큰 침대를 사들여놓다니 매달려 흔들리는 거울 속 깨끗이 면도한 명상가의 얼굴은 후벼 판 듯 움푹하다 산골짜기에서 받아온 물을 따라놓고 난 너에게 약을 삼키게 한다 맹렬히 날 소모시켜야 나는 조금 연장된다 방을 다 차지한 이 침대에서 나는 죽어가길 바랄 뿐 네 소원대로 넌 소박한 풀덤불에 둘러싸이겠지 아껴 사랑하자고 날 설득할 필요 없겠지 결코 삐걱거리지 않겠지 나라면 부업을 접고 남은 돈을 쓰겠지 다른 침대를 들여놓을지도 모르지 어둡고 커다란 방에는 조금씩 아무 냄새도 나지 않겠지

 

 

 

 

                  - 시 작 노 트

                    지금 나는 눈앞에서 서서히 종말을 고하는 세계를 본다. 시너가 흘러내리

                  고 말루는 불타오른다. 투쟁은 계속되지만 슬프고 암울한 승리는 누구의

                  것인가? 사람들은 죽어 가는데 공중에는 컨테이너 박스가 매달려 있는데

                  날마다 울리는 포성, 겨울 가뭄은 지속되고 철새들은 떠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나는 이 세계를 견딜 수 없다. 나는 파편이다. 어미가 다른 내

                  신체들은 분산된다. 내게서 흘러나온, 어미語尾가 제멋대로인 목소리들은

                  내 코를 찌르고 내 귀를 자른다. 나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 나온 감각으로

                  몸서리치며 타오르며 사라지는 자신을 바라보고 싶다. 이것이 나의 혁명이

                  다. 나의 죄의식, 수치심, 필연적으로 실패할 시도. 나는 내 몸에 당신을 태

                  우고, 내 침대에 당신을 싣고, 내 컨테이너에 당신을 쑤셔 박고 흘러넘친다

                  당신이라는 투명한 시너를 온몸에 둘러쓰고 불타오르며 투명한 공중의 벽

                  에 매달려 있다. 우리는 나락으로 떨어질 운명이다. 떨어지는 순간, 나는

                  당신으로, 당신은 나로 되돌아올 것인가?

 

 

 

 

                          - 2001년 '포에지' 등단. 시집<별 모양의 얼룩><명랑하라 팜 파탈>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례자의 잠 / 한석호  (0) 2009.04.25
타인의 의미 / 김행숙  (0) 2009.04.25
몽유도원도 / 이하석  (0) 2009.04.24
버선 / 손창기  (0) 2009.04.24
호르몬그래피 / 김행숙  (0) 2009.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