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애인 / 이정록

폴래폴래 2009. 2. 3. 22:33

 

 

 

 

 

 

 

                   애인            / 이정록 

 

 

 

 

천이백세 살 먹은

내 애인 용봉사 마애불은

천 년 넘게 돌이끼를 입고 서 있다

돌이끼의 수명이 삼천 살 정도라니

내 생애에 옷 한 벌 해 입히기는 글렀다

 

저 돌이끼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만큼이나 장난기 실한 녀석이 있다

내 애인의 실소를 꼭 봐야겠다고

콧구멍에다가 터를 잡은 것이다

재채기 소리 한 번 들으려고, 천 년 넘게

코딱지를 간질이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속세의 아내와 아이들 앞에다 세우고

본처이자 큰엄마이니 절 올려라 농을 치며,

잠깐만이라도 애인의 은밀한 곳에다 터를 잡아야겠다고

불경스럽게 불경 몇 구절을 조아리는 것이다

배꼽 언저리 물오른 돌이끼를 어루만지다가

손톱 밑에다, 고쟁이 쪽 실오라기 한 올 심어 오는 것이다

 

그래 엄지손톱이 이제 용봉사 마애불이다

손톱 밑에 옮겨 온 이끼 한 뿌리

콧구멍 속에다 디밀어 놓고는, 나도

천 년쯤 재채기를 참아볼까나

마애불처럼 슬며시 웃어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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