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오므라진 나팔꽃 입

폴래폴래 2021. 10. 26. 16:56

오므라진 나팔꽃 입

          탑 4

                          이해리

 

 할머니들 입은

 오므라진 나팔꽃 같다

 오므라진 나팔꽃 입들이

 서문시장 난전 국숫집

 나무의자에 앉아 국수를 먹는다

 바퀴벌레 모기약 외치는 행상 옆에서

 더럼을 타지 않고

 천천히 흐르는 구름 같이 느리게 국수를 먹는다

 

 하나같이 뽀글뽀글 볶은 파마머리, 헐렁한 옷

 저승꽃 한두 떨기 손등에 피어난 나팔꽃 입술들

 

 아기를 바구니에 담아 들판에 두고

 모 심었던, 어쩌면 이 나라 적빈의 들판이

 여기까지 오도록 맨몸으로 노역한 세대들

 

 자신을 위해서는 국수 한 그릇도 아끼다가

 저무는 나팔꽃 입술이 되고서야

 한 그릇 국수에 노년을 맡긴다

 가제 손수건 풀어 꺼내는 국숫값 삼천 원이

 더디고도 더뎌서

 연민의 넝쿨이 내 마음을 휘감는다

 

 시집<수성못> 2021.학이사

 

 경북 칠곡 출생. 1998년<사람의 문학> 등단

 시집<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감잎에 쓰다><미니멀라이프> 평사리문학대상, 대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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