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제 굴혈로 돌아온다
이영광
당신에게 도달하는 그리움은 없다
그리움은 내게로 온다
기름을 만땅으로 넣고 남쪽 바다 수직 절벽까지 가서
흰 갈매기들의 보행 멀리, 구멍뿐인 공중을 팽팽히 당겨 보다가도
시월 햇빛 난반사하는 끓는 가마솥, 그 다도해에
무수히 뛰어들어 보다가도,
그리움은 그리움의 칼에 베여 뒹구는 것
우리가 두 마리 어지러운 짐승으로 불탔다 해도
짐승으로 세상을 헤쳐 갈 수 없어
한 짐승은 짐승으로 남았으므로
칼을 녹여 다시 불을 만들 순 없다
제 골대로 역주행하는 공격수처럼 멍청히
뭉그적대는 귀경 차량들 틈에 끼어들 수밖에 없다
다급한 건 생환이어서,
같은 경기도계에서부터 저렇게 밀리는 것이리라
짐승을 사랑할 수 없어
당신이 두 마리 사람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사람을 사랑할 줄 몰라 내가
두 마리 짐승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리움은 제 굴혈로 돌아온다
사 들고 온 비닐봉지를 헤쳐 뭔갈 또 우물거리는 밤
당신에게 나눠 줄 그리움이란 애초에 없었던 거다
혼자 갉아먹기에도 늘 빠듯했던 거다
우리는 사랑이라 부르던 무른 벌레를 눌러 죽였다
나는 살기 위해 평생을 허비할 것이다
1967년 경북 의성 출생. 고대 영문과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8년 문예중앙 등단. 시집<직선 위에서 떨다><그늘과 사귀다>
<아픈 천국><나무는 간다> 노작문학상, 지훈상, 미당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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