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들꽃

폴래폴래 2021. 9. 16. 09:21

들꽃

 

                                  정성원

 

 함부로 자랐다

 날카로운 햇살이 아무렇게나 찌르는 곳에서

 바람을 타는 말은 음지에 뿌리 내리고

 내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입술을 모으는 사람들

 바람은 언제나 물기 많은 쪽으로 불었다

 

 어느 방향으로도 소속되지 못한 내가 바람의 체온을 가질 수 있던 건 태생이 들판이어서라고 소리 없이 쓰러지는 이름을 가져서라고

 

 잘린 삶이 절뚝이며 걷는다

 

 바람에 선동당한 꽃잎, 하늘은 그대로 하늘이고 햇살은 그렇게 햇살이고 구름이 한가롭다 흔들리는 내가 파문으로 번진다

 

 근사한 이름을 가지지 못한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겁의 겁을 건너온 시간이 방향을 비튼다

 

 질긴 뿌리가 비로소 근원이고 비로소 내가 된다는 말

 

 나는 들판에 모태를 두고 있다

 그래서 함부로 살았다고 더 많은 바람을 맞을 거라고

 들을 매운 내가 너머로 너머로 끊임없이 자란다

 

 

 경남 통영 출생. 2020시산맥 등단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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