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 변두리 시

협죽도

폴래폴래 2020. 6. 7. 09:02

협죽도

 

 

                         배종환

 

 너는 유배지에서 왔지

 바다 건너 왔지만 물 없이

 여행 가방 속에서 축 늘어졌네

 캄캄한 옷 속에서 타들어 가는

 허공에 뻗은 발

 흙이 그리웠네

 제국이 멸망해도 폐허가 그리웠네

 독한 목숨 부지한 세월

 왕정 시대 그림에도 네가 있었고

 흙담 마을 사람이 사는 곳곳마다

 복사꽃처럼 때론 눈부시게 하얀 꽃술 달고

 두리번거리며 수런거리며

 부러트리라고 제발 꺾어 달라고

 자살도 못 하는 사람 밤마다

 죽음이 두려워 죽지도 못하고

 흔들흔들 굴러 널브러져

 독을 품고 독만 품고

 한껏 부풀려진 죽음의 꽃마다 숨어든 삶의 영광

 간신히 살아남아 발 디디며

 독을 품은 감정을 숨기며

 수천 년을 살아온 너

 나에게 진하게 입맞춤해도 괜찮아요

 쉿!

 

 

 계간지 파란 2020 여름호

 

 

 

 2015년 발견 신인상 등단

 시집 <야크의 눈> <향기로운 네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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