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 변두리 시

개펄

폴래폴래 2020. 6. 5. 09:59

 

  개펄

 

                           배종환

 

 

 당신이 외롭더라도

 저물어 가는 노을에게 말하지 마라

 흐려진 눈 짱뚱어처럼

 뛰어오르고 싶어도 뛰어오르지 못한

 가슴의 응어리에 대해

 어정쩡한 마음이

 하소연할 곳 찾는다면

 나에게 털어놓고 가볍게 살아 봐라

 살기 위해서 살아남으려고

 얼굴을 일곱 번이나 갈아엎은

 오소소한 부끄러움

 온몸 붉은 버짐으로 타들어 가는 함초

 사는 게 대단한 것도

 힘에 부쳐 주저앉는 것도

 복장 터지는 일도 당신뿐 아니다

 치사한 생각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은 나에게 내동댕이치라

 순식간에 밀려드는 광활한 물살로

 사라지는 나처럼 풀어놓고 가면 된다

 돌아서면 우리 만난 적 없는 인연만 남겠지

 그 막막한 허공에서

 혼자 다리를 꼬고 오래 서 있지 말라

 퍼질러 앉아 울지도 말라

 당신을 부축해 일으켜 줄 허공은 없다

 

 

 계간 파란 2020 여름호

 

 

2015년 <발견> 등단.

시집 <야크의 눈> <향기로운 네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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