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외치 / 유현숙

폴래폴래 2016. 2. 19. 17:35






          외치*


                                        - 유현숙


   1

   청동도끼와 돌촉을 멘 남자가 집을 나섰다


   협곡으로 들어간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침엽수림 아래에서 목 긴

짐승이 오래 우는 밤

   나는 숨죽이고 불면했다

   터진 손으로 부싯돌을 치는 동안 지축이 기울었고 나무는 뿌리째 뽑

혔고

   눈 속에 파묻혔던 남자가 게놈분석으로 돌아왔다

   눈두덩이가 패이고 붉고 서늘하다

   갈비뼈 사이에서 물 흐르는 소리 듣는다 남자를 재웠던 내가 흘린 물

소리다

  

   잠든 동안 남자는 무슨 꿈을 복제했는지 별 조각 같은 아이들과 꽃잎

처럼 흩어지는 手話와 짐승처럼 허기진 내 언어를 만났는지


   윗 이빨에 눌린 혀끝에 눈물 한 점이 얼어 붙어있다


   눈이 녹는 동안 새가 우는 동안 그런 만 년 동안

   그리웠던 것은 마른 살갗과 살갗이 주고받은 이야기다



   2

   젊은 머리칼을 날리며 집을 나선 당신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지 외진

곡벽谷壁에 기대어 서서

   여전히 궁벽窮僻을 꿈꾸는지

   나는 지금 어느 골짝의 만년방에 누워 등이 얼었는지



   3

   외치는 오래됐고 외치는 낡았고 외치는 헐었고 그리고

   말랐다, 혀는 여전히 젖어 있다



   *Oetzi : 1991년 북부 알프스에서 발견된 5,300년 된 미라.




   시집『외치의 혀』현대시학 2016




  -2003년 <문학선>으로 등단. 시집<서해와 동침하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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