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치*
- 유현숙
1
청동도끼와 돌촉을 멘 남자가 집을 나섰다
협곡으로 들어간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침엽수림 아래에서 목 긴
짐승이 오래 우는 밤
나는 숨죽이고 불면했다
터진 손으로 부싯돌을 치는 동안 지축이 기울었고 나무는 뿌리째 뽑
혔고
눈 속에 파묻혔던 남자가 게놈분석으로 돌아왔다
눈두덩이가 패이고 붉고 서늘하다
갈비뼈 사이에서 물 흐르는 소리 듣는다 남자를 재웠던 내가 흘린 물
소리다
잠든 동안 남자는 무슨 꿈을 복제했는지 별 조각 같은 아이들과 꽃잎
처럼 흩어지는 手話와 짐승처럼 허기진 내 언어를 만났는지
윗 이빨에 눌린 혀끝에 눈물 한 점이 얼어 붙어있다
눈이 녹는 동안 새가 우는 동안 그런 만 년 동안
그리웠던 것은 마른 살갗과 살갗이 주고받은 이야기다
2
젊은 머리칼을 날리며 집을 나선 당신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지 외진
곡벽谷壁에 기대어 서서
여전히 궁벽窮僻을 꿈꾸는지
나는 지금 어느 골짝의 만년방에 누워 등이 얼었는지
3
외치는 오래됐고 외치는 낡았고 외치는 헐었고 그리고
말랐다, 혀는 여전히 젖어 있다
*Oetzi : 1991년 북부 알프스에서 발견된 5,300년 된 미라.
시집『외치의 혀』현대시학 2016
-2003년 <문학선>으로 등단. 시집<서해와 동침하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고기나무 / 김형술 (0) | 2016.03.01 |
---|---|
묵정밭 / 유현숙 (0) | 2016.02.21 |
나비 두 마리 / 김광규 (0) | 2016.02.14 |
타르초, 타르초 / 김형술 (0) | 2016.02.09 |
돌지 않는 풍차 / 송찬호 (0) | 2016.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