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베기
- 배성희
장기수 남편 곁을 떠나, 중국변방에서
순희는 김치를 만들어 팔았다
조선어를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어린 아들은
약 먹고 죽은 쥐를 잘 치워 주었다
기차길옆 모자의 집을 이웃남자가 드나들고
행상을 단속하는 경찰관도 순희를 탐했다
눈치 빠른 아들의 돌팔매질은 아팠다
커다른 물고기 연(鳶)에
온통 바다색 스프레이를 뿌려주고, 아들은
사고로 죽었다 끈 떨어진 한 마리
푸른 하늘로 헤엄쳐 가버렸다
아들의 뼛가루를 대지에 뿌린 다음날
쥐약으로 버무린 김치를 식당에 두고 나왔다
순희는, 치마를 꺼내 다려 입고
걸어갔다 좁고 긴 치마를 입고
거침없이 걸어갔다 거침없이
망종*까지 베어야 하는 보리밭으로
모든 움직임이 캄캄해진 우주.
치마 치마 스치는 소리뿐
그것은 시퍼런 보리 베는 소리처럼 단호했다
*芒種(망종): 장률 감독의 영화
『시와문화』2013년 여름호
- 2009년<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악어야 저녁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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