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보리 베기 / 배성희

폴래폴래 2013. 6. 28. 23:41

 

 

 

 

 

 

 

 

 

   보리 베기

 

 

                                                   - 배성희

 

 

 

 장기수 남편 곁을 떠나, 중국변방에서

 순희는 김치를 만들어 팔았다

 조선어를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어린 아들은

 약 먹고 죽은 쥐를 잘 치워 주었다

 

 기차길옆 모자의 집을 이웃남자가 드나들고

 행상을 단속하는 경찰관도 순희를 탐했다

 

 눈치 빠른 아들의 돌팔매질은 아팠다

 

 커다른 물고기 연(鳶)에

 온통 바다색 스프레이를 뿌려주고, 아들은

 사고로 죽었다 끈 떨어진 한 마리

 푸른 하늘로 헤엄쳐 가버렸다

 

 아들의 뼛가루를 대지에 뿌린 다음날

 쥐약으로 버무린 김치를 식당에 두고 나왔다

 순희는, 치마를 꺼내 다려 입고

 걸어갔다 좁고 긴 치마를 입고

 거침없이 걸어갔다 거침없이

 망종*까지 베어야 하는 보리밭으로

 

 모든 움직임이 캄캄해진 우주.

 치마 치마 스치는 소리뿐

 그것은 시퍼런 보리 베는 소리처럼 단호했다

 

 

 *芒種(망종): 장률 감독의 영화

 

   『시와문화』2013년 여름호

 

 

 

 

 - 2009년<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악어야 저녁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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