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당신과 살던 집 / 권대웅

폴래폴래 2013. 6. 27. 11:07

 

 

 

 

 

 

 

 

 

   당신과 살던 집

 

 

                                              - 권대웅

 

 

 길모퉁이를 돌아서려고 하는 순간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

 햇빛에 꽃잎이 열리려고 하는 순간

 기억 날 때가 있다

 

 어딘가 두고 온 생이 있다는 것

 하늘 언덕에 쪼그리고 앉아

 당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어떡하지 그만 깜빡 잊고

 여기서 이렇게 올망졸망

 나팔꽃씨앗 같은 아이들 낳아버렸는데

 갈 수 없는 당신 집 와락 생각 날 때가 있다.

 

 햇빛에 눈부셔 자꾸만 눈물이 날 때

 갑자기 뒤돌아보고 싶어질 때

 노을이 붕붕 울어 댈 때

 순간, 불현듯, 화들짝,

 지금 이 생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억과 공간의 갈피가 접혔다 펴지는 순간

 그 속에 살던 썰물 같은 당신의 숨소리가

 나를 끌어당기는 순간

 

 

  『시와문화』2013년 여름호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당나귀의 꿈><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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