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살던 집
- 권대웅
길모퉁이를 돌아서려고 하는 순간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
햇빛에 꽃잎이 열리려고 하는 순간
기억 날 때가 있다
어딘가 두고 온 생이 있다는 것
하늘 언덕에 쪼그리고 앉아
당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어떡하지 그만 깜빡 잊고
여기서 이렇게 올망졸망
나팔꽃씨앗 같은 아이들 낳아버렸는데
갈 수 없는 당신 집 와락 생각 날 때가 있다.
햇빛에 눈부셔 자꾸만 눈물이 날 때
갑자기 뒤돌아보고 싶어질 때
노을이 붕붕 울어 댈 때
순간, 불현듯, 화들짝,
지금 이 생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억과 공간의 갈피가 접혔다 펴지는 순간
그 속에 살던 썰물 같은 당신의 숨소리가
나를 끌어당기는 순간
『시와문화』2013년 여름호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당나귀의 꿈><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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