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4월은 잔인한 달 / 최영미

폴래폴래 2013. 4. 5. 11:08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4월은 잔인한 달

 

                                                    - 최영미

 

 

 

 그것을 하지 않고

 팔 년 만에 돌아온 봄이었다

 

 금욕에 길들여진 정갈한 방.

 화분에 물을 주고 밖을 내다보니

 벌레처럼 들끓는 봄볕,

 범람하는 꽃가루 때문인가

 

 쉽게 행복해지기를 거부하던 육체가

 바위처럼 뻣뻣해진 가슴을 열고,

 뜨거웠던 용암의 분화구를 추억한다

 

 사교계의 꽃이 되고 싶지 않아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가

 길게 누워 봄을 앓는다

 

 소문만 무성했지 자신을 불사르지 못한

 생애의 마지막 연기를 준비하며

 옷을 갈아입고 립스틱을 칠한다

 (취미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겠지?)

 

 질겨진 가죽에 향수를 바르면

 육식동물이 될까?

 

 

 

 시집『도착하지 않은 삶』문학동네 2009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1992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꿈의 페달을 밟고><돼지들에게>

    산문집, 장편소설, 번역서 등이 있다. 이수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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