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라스푸틴 / 류인서

폴래폴래 2013. 4. 5. 11:40

 

 

 

 

 

 

 

 

 

    라스푸틴

 

                                      - 류인서

 

 

 

 그는 북국에서 왔다

 뻣뻣한 삼나무 수염을 가진 시베리아 농부의 아들

 그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 옷을 한 번도 벗은 적이 없다

 

 그는 저잣거리의 차력사처럼

 무성한 괴력의 수염으로

 시베리아발 밤열차를 끌고 간다

 눈 덮인 호수와 평원을 지나

 12월의 불길한 밤

 음모의 총구 속을 느릿느릿 통과한다

 

 그 시간, 그의 뒷머리를 내리친 은촛대의 황금불꽃은

 그러니까 빛의 수족이 아니어서

 열차를 놓친 그의 영혼은

 네바강 두꺼운 얼음구멍 아래 수장된다

 

 얼음이 녹고

 저자의 취한 바람이 주문과 추문으로 그의 부활을 부추길 때

 검은 유머처럼 강물 위로 떠올라 펼쳐지는

 그의 승복(僧服)

 그것은 내가 사는 이 왕국의 지도와 난감토록 닮아있다

 지도의 아랫도리에는 거대한 남근이 달려있었다

 

 

 

 

  시집『신호대기』문지 2013

 

 

 

 - 대구 출생. 2001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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