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푸틴
- 류인서
그는 북국에서 왔다
뻣뻣한 삼나무 수염을 가진 시베리아 농부의 아들
그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 옷을 한 번도 벗은 적이 없다
그는 저잣거리의 차력사처럼
무성한 괴력의 수염으로
시베리아발 밤열차를 끌고 간다
눈 덮인 호수와 평원을 지나
12월의 불길한 밤
음모의 총구 속을 느릿느릿 통과한다
그 시간, 그의 뒷머리를 내리친 은촛대의 황금불꽃은
그러니까 빛의 수족이 아니어서
열차를 놓친 그의 영혼은
네바강 두꺼운 얼음구멍 아래 수장된다
얼음이 녹고
저자의 취한 바람이 주문과 추문으로 그의 부활을 부추길 때
검은 유머처럼 강물 위로 떠올라 펼쳐지는
그의 승복(僧服)
그것은 내가 사는 이 왕국의 지도와 난감토록 닮아있다
지도의 아랫도리에는 거대한 남근이 달려있었다
시집『신호대기』문지 2013
- 대구 출생. 2001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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