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꽃의 몰락을 모른다
- 권애숙
꽃들이 청첩장을 남발하던 날 사거리집 손칼국수는 식지도 않는다 맞은편에 앉아 너는 묵은 김치를 찢고 유리창 너머 지구대에선 여경이 조서를 쓰고 있다 사랑을 남발하다 시집가는 늙은 여자처럼 질척하게 떠벌이다 가는 꽃들은 발목도 안 보이는데 허리 꺾인 담배꽁초는 재떨이 안에서도 연기를 뿜어댄다 떠 넣어요 자꾸 떠 넣어야 식어요 고개를 숙인 너는 뜨거운 국물 휘휘 저으며 불어터지는 면발을 뭉갠다 잊어주는 게 죄라면 좋겠어 떠난 것들이 개명을 할 때 젊은 여경 앞에 엎드려 추억이란 추한 기억일 뿐이라고 손도장이라도 찍을까 너는 열한 번째 첫사랑처럼 여름이 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제 상처를 팔아 서둘러 웨딩촬영을 끝낸, 꽃은 꽃의 몰락을 모른다
시집『맞장 뜨는 오후』문학의전당 2009년
- 경북 선산 출생. 계명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1995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차가운 등뼈 하나로><카툰세상>
부산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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