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무조음을 엿듣다
─행성의 아이들
- 김추인
저문 숲의 옛 서고를 방문하다
늙은 고목의 잔가지를 흔들면 먼지들 깨어 날아오르는 사이로 후둑후둑 지는
꽃잎들을 보다
이 나라의 숲에서는 층층이
도열하거나 섞여 서거나 일만, 나무들의 기립을 보다
오래 묵은 피톤치드 향에 제 안부를 물으니
곰팡내 쪽으로 기우는 중이라고 회신을 보내오다
어떠랴 먼지 빛으로 어두워지는 숲은 깊이에 이르는 일
어떠랴 오래고 먼 박제의 시간은 술독처럼 익어갈 일
마음이 얼룩덜룩한 날은 낮은 조도의 숲으로 들다
숲으로 난 소롯길은 애써 시대를 가르지 않아도 마른 풀숲이나 천년의 그늘
이 숨긴 환유의 동굴에 이르는 일
아마도 서쪽 골짜기일 것이다
귀퉁이 나간 낙엽 한 장 주워 들면 행간의 연필자국, 사상 한 토막에도 늑골
아래서 들리는 내 口音
당대의 언표들에 무릎을 치다
떨어져나간 <들뢰즈>의 옆구리께라 믿으며 무채색으로 닿는 <쇤베르크>의 무조음을 듣다
문득이세계는흉가로들어가는문이라주석을단<파스칼>*은잠시잊기로하다
*인간은 외딴섬에 홀로 던져졌고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는다(파스칼)
『시안』2011년 여름호
- 경남 함양 출생. 1986년『현대시학』등단.
시집<온몸을 흔들어 넋을 깨우고><나는 빨래예요><광화문 네거리는 안개주의보>
<벽으로부터의 외출><모든 하루는 낯설다><전갈의 땅><프렌치키스의 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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