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강의 이마를 짚어주는 저녁 어스름 / 배한봉

폴래폴래 2011. 6. 6. 10:48

 

 

 

 

 

 강의 이마를 짚어주는 저녁 어스름

 

                                                      - 배한봉

 

 

 

 물고기에게 물은 살과 피, 아니 먼 조상들, 아니 물고기에게

 물은 연인, 아니 아니 물고기에게 물은

 달을 품고 있는 우주

 

 나는 한번도 물속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물고기만큼 물을 사랑하고, 물과 키스하며

 안과 밖이 맑은 물로 채워진 세계가 되어본 적 없다

 

 지금도 강변 모래사장을 잃은 물이 뿌우연 침묵으로 아우성치는 시간

 

 자궁을 긁어내고 혼절한 여자처럼

 원치 않던 바닥을 긁어내고 누워 있는 강

 

 나는 한번도 물에서 살아본 적 없다고 세 번 부정하지만

 내가 사는 세계의 안과 밖에는 물이 가득 차 있다

 

 그러니까 나나 당신이나 물이 아픈 세계에서는 살 수 없는

 우주의 물고기

 

 과거의 나에게, 아니 아니 미래의 우리에게

 보洑를 풀어 달라 아우성치는,

 지금은 뿌우옇게 아픈 강의 이마를 저녁 어스름이 짚어주는 시간

 

 

 

 

  『현대문학』2011년 6월호

 

 

 

 

  - 경남 함안 출생. 1998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시집<흑조><우포늪 왁새><악기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