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입이 크다
- 양애경
슬픔은
괴물메기처럼 입이 커서
한입에 꿀꺽
나를 삼킨다
차갑고 축축한 뱃속에서 뒤척뒤척 하는 밤
졸음에 끌려들다가도 자꾸자꾸
슬픔이 깨운다
초롱초롱한 눈
시간이 섰다가 갔다가
섰다가 갔다가
흰 머리카락이 자라나 천정까지 뻗고
다시 무 뿌리처럼 이부자리에 내리면
사람 얼굴을 한 거미가 슬픔 한 끝을 타고 내려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본다
모기가 내 목덜미의 피를 빨고
거미는 모기의 피를 빤다
목구멍을 채우는 비릿한 맛
슬픔은 입이 크다
하지만 삶은 입이 더 크다
나는 무릎으로 종종 기어서
새벽의 목구멍까지 올라간다
목젖을 살살 문질러
슬픔이 나를 토해내게 한다
그리고
서류가방을 들고 서쪽으로 출근한다
『시안』2010년 겨울호
- 1956년 서울 출생. 충남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사랑의 예감>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내가 암늑대라면>
공주영상정보대 영상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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