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슬픔은 입이 크다 / 양애경

폴래폴래 2010. 12. 24. 18:03

 

 

 

 

 

 슬픔은 입이 크다

 

                                    - 양애경

 

 

 

 슬픔은

 괴물메기처럼 입이 커서

 한입에 꿀꺽

 나를 삼킨다

 

 차갑고 축축한 뱃속에서 뒤척뒤척 하는 밤

 졸음에 끌려들다가도 자꾸자꾸

 슬픔이 깨운다

 

 초롱초롱한 눈

 시간이 섰다가 갔다가

 섰다가 갔다가

 

 흰 머리카락이 자라나 천정까지 뻗고

 다시 무 뿌리처럼 이부자리에 내리면

 사람 얼굴을 한 거미가 슬픔 한 끝을 타고 내려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본다

 

 모기가 내 목덜미의 피를 빨고

 거미는 모기의 피를 빤다

 목구멍을 채우는 비릿한 맛

 

 슬픔은 입이 크다

 하지만 삶은 입이 더 크다

 

 나는 무릎으로 종종 기어서

 새벽의 목구멍까지 올라간다

 목젖을 살살 문질러

 슬픔이 나를 토해내게 한다

 

 그리고

 서류가방을 들고 서쪽으로 출근한다

 

 

 

 

 『시안』2010년 겨울호

 

 

 

 

 

 - 1956년 서울 출생. 충남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사랑의 예감>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내가 암늑대라면>

    공주영상정보대 영상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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