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저녁이 왔다
- 송찬호
때는 저녁이었다.
남자가 여자 옆구리에 새를 넣어 가둘 때
호두나무가 돼지 오줌 냄새를 풍기며 어두워갈 때
그리고 마구간에서 푸른 공기가 태어날 때
이렇게 어둠의 젖이 많이 흘러넘치는 저녁,
가서 뜨거운 물을 준비하렴
실과 가위도 가져오렴
피에 젖은 꽃을 골라 탯줄을 잘라야 하니까
여느 때처럼 고요히 푸른 저녁이 찾아왔다
이젠 방울도 고단한지 목이 잠겨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가난한 돌밭길을 가는 노새같이
놋쇠비를 맞으며 젖은 산길을 가는 여우같이
『시와세계』2010년 겨울호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 독문학과 졸업.
1987년<우리 시대의 문학> 등단.
시집<10년 동안의 빈 의자><붉은 눈, 동백>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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