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물소리를 듣는다 / 조용미

폴래폴래 2010. 11. 18. 20:59

 

 

 

 

 

물소리를 듣는다

   ─묵계리

 

                                        - 조용미

 

 

 

 默함이 족히 용납된다면* 이곳에 며칠 더 머물러도 좋으리

 오래된 집과 나무와 정자를 둘러보며

 말없이 默溪의 소리를 들어보리

 

 길안천 물소리 들리지 않는

 묵계서원

 

 벌레들이 깨알 같은 구멍과 얼룩무늬 공사를 벌여 놓은

 울퉁불퉁 노랗고 푸른

 물가의 돌멩이 주워오듯 가져온 모과 몇 개

 

 듣지 못한

 묵계 물소릴 향으로 들려주네

 

 담장 뒤 우뚝한 소나무만 잘 보던 눈이

 한 그루 모과나무의 공사에 무릎을 모으게 될 때 까지

 드문드문 오게 되는 곳

 

 모과가 검게 변할 때까지 나의 방은

 묵계 물소리로 깊어가리

 묵계 물소리를 모과에서 듣게 되는 십일월

 

 토란잎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자작나무 흰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

 은행잎들 비바람에 죄다 털리는

 

 이곳 나의 거처는 코로 듣는

 묵계 물소리 그윽하네

 

 

 *『논어』에서 인용.

 

 

 

 

 시집『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문지 2007

 

 

 

 

 -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한길문학』등단.

    시집<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2005년 김달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