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시집『내가 사랑하는 사람』현대문학북스 2000
- 나를 떠나버린 시들을 불러모아
몇날 며칠 어루만져보다가
다시 세상 밖으로 떠나보낸다.
나무 밑에 누워 있다가 새똥이 내 눈에 들어가
그만 장님이 된 심정이다.
잘 가라.
고통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시도 인간적인 것이겠지.
2000년 12월
정호승
- 1950년 대구 출생.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시집<슬픔이 기쁨에게><서울의 예수><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등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지리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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