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폴래폴래 2010. 11. 19. 16:15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시집『내가 사랑하는 사람』현대문학북스 2000

 

 

 

 

 

 - 나를 떠나버린 시들을 불러모아

   몇날 며칠 어루만져보다가

   다시 세상 밖으로 떠나보낸다.

   나무 밑에 누워 있다가 새똥이 내 눈에 들어가

   그만 장님이 된 심정이다.

 

   잘 가라.

   고통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시도 인간적인 것이겠지.

 

   2000년 12월

   정호승

 

 

 

  - 1950년 대구 출생.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시집<슬픔이 기쁨에게><서울의 예수><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등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지리산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