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은하수역, 저쪽 / 황학주

폴래폴래 2010. 6. 25. 01:05

 

 

 

 

 

  은하수역, 저쪽

 

                               - 황학주  

 

 

 

 정거장 대합실 파닥이며

 되새가 들어왔다

 

 산간에 눈이 내려

 달빛이 산마루를 덧칠하며 원 없이 넘어올 때

 탈탈 털고 대합실에 들어서는 사내가 발을 전다

 오래 절룩거려온 나이는 먼 데 있는 정거장까지 알아볼 것이다

 주위에 목마름이 심한 별들이 많다는 것은

 그 증거이다

 

 별 발자국이 눈밭에도 찍혀 있다

 발자국의 뿌리는 사내의 키만큼 깊을 것이고

 별의 뿌리는 별보다 더 먼 곳에서 요동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눈밭을 절며 걸어온 발로

 걷기 전의 성한 데를 건드려보는 것이다 반짝반짝,

 

 하늘은 가지에 목이 걸린 홍매紅梅를 밤새 살리고 있었나보다

 숨소리 돌아오며, 안색 밝아지는

 산마루 앞 칸으로 옮겨 타려다 멈칫거리는 앳된 별

 

 사내가 대합실 우윳빛 유리에 비치는 발자국을 지켜보고 있다

 되새가 머리를 박으며 대합실을 빠져나간다

 아무래도 되새는 부력이 좋은 봄기차로 가려는 것 같다

 

 새벽밥 먹은 별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자

 빈자리마다 덴 자국이 있었다

 

 

 

 

 시집『노랑꼬리 연』서정시학 2010

 

 

 

 

  시인의 말

 

  멀리 가서 쓴 시들이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내렸다.

 

  사랑에 대해 얘기할 시간이다.

  그것이 나의 出世.

 

  2010년 봄 앞에서

  황학주

 

 

 

 

  - 1954년 전남 광주 출생.

     1987년 시집『사람』으로 등단.

     시집<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갈 수 없는 쓸쓸함><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

     <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루시><저녁의 연인들>등, 시선집<상처학교> 등

     서울문학대상, 서정시학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