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간지럼증을 앓는 여자와의 사랑 / 이현승

폴래폴래 2010. 6. 24. 23:25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간지럼증을 앓는 여자와의 사랑

 

                                                 - 이현승  

 

 

 

 이것은 웃음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간지럼증을 앓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에게 있어 웃음은 보호막,

 일종의 비누거품과 같다

 문지르면 더 잘게, 더 많이 일어나는 거품처럼

 손끝이 닿을 때마다 소스라치듯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럴 때면 나는 작은 거품들에 둘러싸인 비누가 손안에서 미끌거리는 것을 본다

 작고 미끌거리고 단단한 그녀는

 웃음풍선을 마신 사람처럼 기글기글 웃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

 감당할 수 없는 간지러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흘러넘친다

 흘러넘치는 소리를,

 다가갈 수 없는 거리를

 나는 그녀의 웃음소리에서 발견한다

 작은 웃음으로 이루어진 보호막

 웃음 속의 공포

 이것은 공포에 관한 이야기다

 

 웃음을 멈추려는 의지와

 중단할 수 없는 웃음의 명령 사이에서

 그녀가 미끄러지듯

 분명하게

 터져나오는 웃음 앞에서

 나는 웃음을 금지하는 근엄한 독재자였다가

 볼까지 빨개진 벌거숭이였다가

 얼렁뚱땅 함께 웃고 있는 바보였다가

 끝없이 터져나오는 웃음 끝에서 결국 눈물을 한 방울 짠다

 그것은 슬픔 같은 것이고

 그것은 공포이며

 그것은 완전한 벌거숭이인 육체로서의 웃음이며

 공포 속에서도 웃는 사랑이다

 이것은 억압에 관한 이야기다

 

 

 

 시집『아이스크림과 늑대』랜덤하우스 2007

 

 

 

 

 

  - 1973년 전남 광양 출생. 고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1996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2002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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