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간지럼증을 앓는 여자와의 사랑
- 이현승
이것은 웃음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간지럼증을 앓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에게 있어 웃음은 보호막,
일종의 비누거품과 같다
문지르면 더 잘게, 더 많이 일어나는 거품처럼
손끝이 닿을 때마다 소스라치듯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럴 때면 나는 작은 거품들에 둘러싸인 비누가 손안에서 미끌거리는 것을 본다
작고 미끌거리고 단단한 그녀는
웃음풍선을 마신 사람처럼 기글기글 웃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
감당할 수 없는 간지러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흘러넘친다
흘러넘치는 소리를,
다가갈 수 없는 거리를
나는 그녀의 웃음소리에서 발견한다
작은 웃음으로 이루어진 보호막
웃음 속의 공포
이것은 공포에 관한 이야기다
웃음을 멈추려는 의지와
중단할 수 없는 웃음의 명령 사이에서
그녀가 미끄러지듯
분명하게
터져나오는 웃음 앞에서
나는 웃음을 금지하는 근엄한 독재자였다가
볼까지 빨개진 벌거숭이였다가
얼렁뚱땅 함께 웃고 있는 바보였다가
끝없이 터져나오는 웃음 끝에서 결국 눈물을 한 방울 짠다
그것은 슬픔 같은 것이고
그것은 공포이며
그것은 완전한 벌거숭이인 육체로서의 웃음이며
공포 속에서도 웃는 사랑이다
이것은 억압에 관한 이야기다
시집『아이스크림과 늑대』랜덤하우스 2007
- 1973년 전남 광양 출생. 고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1996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2002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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