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지지 않는 꿈
- 김선우
앉아도 서도 누워봐도 모든 자세가 편안하지 않아 아득한 벼랑에서 뛰어내렸더니 가슴뼈만 부서졌다 큰 곰을 사냥하고 돌아오니 찔러넣은 창날에 내가 피흘렸다
이제는 곧 죽을 수 있겠구나, 아끼던 것 모두 나눠주었다 손톱이 못 생겼다고 투덜거리던 막내에겐 손톱을 주고 실명한 오빠에겐 눈알을 주고 심장, 머리칼까지 잡히는대로 거두어 가지라고 유서도 마쳤는데 내가 죽어지지 않아
창밖을 내다보니 다시 벼랑 끝이었다 벼랑 밑은 고요한데 그 고요 무서워 누워 기다리던 상여를 확, 열어젖혔더니
내 것인 줄 알았던 머리칼 산발하고 우는 산벚꽃나무가 보였다 굴삭기가 파들어간 붉은 산허리, 내 것인 줄 알았던 내 눈동자를 품고서 나보다 먼저 죽은 계곡이 보였다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내린 아기꽃들, 먼저 나간 상여는 꽃상여였다
시집『도화 아래 잠들다』창비 2003
- 1970년 강릉 출생. 강원대 국어교육과 졸업.
1996년『창작과비평』등단.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도화 아래 잠들다><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산문집<물 밑에 달이 열릴 때><김선우의 사물들>
동화 <바리공주> 장편소설<나는 춤이다>
현대문학상, 천상병시상, 이육사문학상, 올해의 작가상,올해의 좋은시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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