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봉선
- 장철문
저 깊은 곳에는, 내 여자가 품은 것 같은
방 속에는
흰 줄무늬 다리를 가진 모기도
들어가고
개미도 더듬이를 흔들며 들어가고
벌들도 엉덩이를 씰룩이며
물자라 알 같은 화분(花粉)을 짊어지고 들어가는
보랏빛 방 속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구름의 행간에 터진 쪽빛에는
그 가슴 어딘가에
무엇을 품고 있기는 있는 것일까?
그 쪽빛 어디쯤 말고는
달리 감출 곳도 없는 하늘에는
무슨 그리운 것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코줌배기를 가져가 벌름거리는 것으로는
허리를 꺾고 무릎을 꿇고
한쪽 눈을 찌그려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가늠할 수도 없는
방 속에는
산양의 뿔처럼 말려들어간
방 속에는
흰 수문장을 건드리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방 속에는
코로는 맡을 수 없는 사향(麝香) 같은 것이 흘러서
그 앞에서는
그만 아득해지고 마는 것일까?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주파수로 흘러서
저절로 막막해지는 것일까?
무슨 수가
꼭 있기는 있는 것이어서
쪽빛의 궁창(穹蒼)이 도무지 손쓸 수 없이
무엇을 품기는 품은 것 같이
저 아득한 방도
벌과 개미와 모기와의 사이에 뭘 품기는 품은 것일까?
하늘이
내 가슴과의 사이에 꼭 뭘 품기는 품은 것 같이
『서정시학』2010 봄호
- 1994년『창작과비평』등단.
시집<바람의 서쪽><산벚나무의 저녁><무릎 위의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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