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물봉선 / 장철문

폴래폴래 2010. 4. 22. 23:53

 

 

 

 

 

 

  물봉선

 

                      - 장철문 

 

 

 

 저 깊은 곳에는, 내 여자가 품은 것 같은

 방 속에는

 흰 줄무늬 다리를 가진 모기도

 들어가고

 개미도 더듬이를 흔들며 들어가고

 벌들도 엉덩이를 씰룩이며

 물자라 알 같은 화분(花粉)을 짊어지고 들어가는

 보랏빛 방 속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구름의 행간에 터진 쪽빛에는

 그 가슴 어딘가에

 무엇을 품고 있기는 있는 것일까?

 그 쪽빛 어디쯤 말고는

 달리 감출 곳도 없는 하늘에는

 무슨 그리운 것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코줌배기를 가져가 벌름거리는 것으로는

 허리를 꺾고 무릎을 꿇고

 한쪽 눈을 찌그려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가늠할 수도 없는

 방 속에는

 산양의 뿔처럼 말려들어간

 방 속에는

 흰 수문장을 건드리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방 속에는

 코로는 맡을 수 없는 사향(麝香) 같은 것이 흘러서

 그 앞에서는

 그만 아득해지고 마는 것일까?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주파수로 흘러서

 저절로 막막해지는 것일까?

 무슨 수가

 꼭 있기는 있는 것이어서

 쪽빛의 궁창(穹蒼)이 도무지 손쓸 수 없이

 무엇을 품기는 품은 것 같이

 저 아득한 방도

 벌과 개미와 모기와의 사이에 뭘 품기는 품은 것일까?

 하늘이

 내 가슴과의 사이에 꼭 뭘 품기는 품은 것 같이

 

 

 

 

  『서정시학』2010 봄호

 

 

 

 

  - 1994년『창작과비평』등단.

    시집<바람의 서쪽><산벚나무의 저녁><무릎 위의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