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기쁘거나 슬프거나 / 김지녀

폴래폴래 2010. 3. 12. 10:28

 

 

 

 

 

 기쁘거나 슬프거나

 

                                 - 김지녀 

 

 

 

 사람들은 서로 다른 꿈에서

 기쁘거나 슬프다

 주름이 많이 잡힌 커튼을 열면

 견고하지 못한 벽이 부풀었다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기둥 없이 사는 것들은

 아무도 모르게 피 흘리며 캄캄하게 날아가 운다

 점점 야위어 가는 것은 먹구름 같은 숲

 뿌리 없이 자라는 나무에 폭언들이 빨갛게 열려 있다

 잎들은 서로를 오해하고 의심하고

 잘 익은 것 하나를 한입 베어 물고

 사람들이 저렇게 손으로 공손하게 입을 가리고 있는 것은

 웃기 위함인지 울기 위함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내 머릿속에서는 하루에도 수천 번 비가 내리고

 조용한 해마들이 눈에 가시를 세우고 끝없이 흘러 다닌다

 더욱 투명해지기 위해

 사람들이 크게, 웃고 있다

 울고 있다

 오늘은 남쪽에서 북쪽까지 거대한 비행운이 남아서

 밤의 한쪽에는 뜨거운 빗물이 흐르고 다른 쪽에는 영원한

얼음이 떠다닌다

 어제와 다른 길을 가며 모습을 바꾸는 달 아래서

 사람들은 아직 잠들어 있다

 

 

 

 시집『시소의 감정』민음사 2009

 

 

 

 

 - 1978년 경기 양평 출생. 성신여대 국문과, 고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2007년《세계의 문학》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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