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눈썹 / 김혜순

폴래폴래 2010. 3. 10. 17:51

 

 

사진:네이버포토

 

 

 

 

  눈썹

 

            - 김혜순 

 

 

 얕은 물속에서 오래 묵은 몸이 부화하나 보다

 물밖으로 쉴 새 없이 뽀얀 숨이 올라온다

 

 잠시 후 몸을 암흑으로 잠근 눈꺼풀 한 쌍이 날아오른다

 

 노란색으로 벌어진 상처 하나가 날아간다

 물수제비로 떠낸 파문 한 닢 날아간다

 

 껍질을 버린 내가 팔락팔락 숨을 쉰다

 

 잠은 깊어서 노랑나비 한 마리는 멀다

 

 콩떡 먹고 입 벌리면 뿜어져 나오는 노란 가루

 발정난 소나무들이 앞산자락으로 송화를 내뿜는다

 

 부신 햇살에 날아가는 내 어금니처럼 노란 것

 

 바람도 안 부는데 내 속에 살던

 바람의 터럭 같은 것이 두근두근 날아간다

 

 나는 내 영혼에서 냄새가 난다 라고 쓴다

 나는 두근거리는 노랑을 뱉고 싶다 라고 쓴다

 

 노랑나비 다리에 수평선이 묶여 있다

 

 호숫가에서 수천 개의 회초리가 일어나듯

 버드나무 가지들이 전신을 떨고 있다

 

 잠깸과 잠듦의 소용돌이가

 깜빡깜빡

 낮과 밤 사이에 그어진 빗금 하나를 입에 물고

 깜빡깜빡

 

 나는 저 혼자 잘도 날아간다

 끌려가는 수평선이 내 종아리를 칭칭 감고 있다

 

 당신이 불씨 한 알처럼 사그라지던

 눈꺼풀 한 쌍을 훅 불면

 나비 한 마리 몸은 어디다 두고

 호수 위로 저 혼자 잘도 날아간다

 

 

 

『현대시』2010년 1월호

 

 

 

 

  - 1979년『문학과지성』등단.

     시집<한 잔의 붉은 거울><당신의 첫>등 다수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현재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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