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밀착(密着) / 권현형

폴래폴래 2010. 2. 5. 11:11

 

 

 

 

 

  밀착(密着)

 

                       - 권현형 

 

 

 

 한때 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숨죽여 울곤 했다

 서둘러 폭삭 늙어버리고 싶었다

 슬픔도 폭삭 늙어버릴 줄 알았다

 

 까무룩 혼절할 듯 높이 나는 새를 향해

 셔터를 누르자 해가 툭 떨어진다

 사라진 비행기처럼 잔해조차 없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한꺼번에 검어진 섬의 숲을 찍고

 그는 카메라 렌즈를 옆으로 돌리며 마음이

 어두워서 그런지 검은 풍경이 좋다고 말한다

 어둠 속 그의 숲은 열대림처럼 아직 뜨거워 보였다

 

 그래, 나 또한 갑자기 늙어버린

 풍경이 좋다 어둠이 좋다

 누구와도 농도 백 프로로 밀착될 순 없어

 누구와도 뼛속까지 하나일 순 없어

 골수까지 차오르는 어둠에나

 맡길 곳 없는 나를 의탁한다

 저 검은 광대무변에나

 

 

 

 

  시집『밥이나 먹자, 꽃아』천년의시작 2006

 

 

 

 

  - 강원도 주문진 출생. 강릉대 영문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석,박사 수료.

     시집<중독성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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