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우울증이 매달려 있다
- 심명수
관념의 다이아몬드 못을 박아 거미가 집을 지었다
먹줄 튕기며, 얼개 팽팽하게, 때론 탄력 있게 얽어놓고
사람들은 함부로 그 생의 회로도를 빗자루로 쓸어낸다
청소 용역인처럼 중요한 증거를 함부로 삭제해버린다
가끔씩 누락된 것들 사다리 타고 내려와
쓸려나간 원인을 묻고 가기도 한다
누군가 이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누락되었다
맑은 허공에 파문이 인다
파문은 거미집처럼 의혹을 남기고 허공을 아파한다
허공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고질병 같은 안개 밀려왔다 밀려간다
말랑말랑한 잠을 흔들어 깨워놓고 천연덕스럽게 웃는 얼굴
핼쑥한 그림자도 끌고 와 발밑에 함부로 버린
나의 원고들과 생의 질긴 목을 조인다
이제 누가 방아쇠를 당겼을까
반짝이는 물결, 깨어진 거울이 생각을 어지럽힌다
나는 깨진 거울의 각진 표면의 모서리에서
실명한 눈에 비치는 이지러진 달을 보듯 나를 본다
적중이다
물컹한 생의 속살 속에서 피가 짓물러 흐르고
너는 그렇게 과녁 속으로 떨어졌다
허공은 다시 우울증을 매달고
베레타 M9 실탄이 다시 나를 향해 날아온다
- 1966년 충남 금산 출생. 한국방송대 국문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과과정 수료.
201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인천 은광학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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