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구름님)
배꼽
- 김충규
가끔 배꼽을 내려다본다
특히 샤워하고 나올 때 약간 물기가 묻은 배꼽을
내 몸이 가진 아주 작은 우물,
샤워할 때 고이는 물, 혹은
몸이 땀을 낼 때 그 땀으로 연명하는,
태어나자마자 얻은 흉터,
이 흉터는 평생 가져가야 한다
살아가면서 갖가지 흉터가 몸에 기록되지만
배꼽은 그 모든 흉터의 원형인 것,
허리를 체조선수같이 구부릴 수 있다면
혀로 살짝 핥아보고 싶은 배꼽,
사랑하는 여자의 배꼽을 애무할 때면
그 몸의 전체가 서서히 비틀리며 전율하는 것같이
결국 흠씬 땀을 흘리는 것같이
내 혀가 내 배꼽에 닿을 때의 느낌도 그러할까
배꼽에 귀를 대어볼 수 있다면
끊기기 전 모친의 자궁과 연결되었던 탯줄의
가느다란 떨림이 전해질지도 모를 일,
거울을 통해서도 볼 수 있으나
배꼽은 고개를 밑으로 젖히고 보는 게 제격,
평생 메우면서 살아가는 삽질의 달인도
제 작은 배꼽은 메우지 못하고 일생을 마감한다
배꼽을 가끔 들여다보면서 때를 벗겨준다
태어나자마자 얻은 최초의 고통,
그 신성한 흉터의 제단을 말끔하게 청소하는 것이다
그 아주 작은 우물 안에 내 첫 울음이 매장돼 있으므로
시집『아무 망설임 없이』문학의전당 2010
- 경남 진주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 등단.
시집<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
<물 위에 찍힌 발자국>등 수주문학상, 미네르바작품상 수상.
『시인시각』 발행인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프레소 / 김종미 (0) | 2010.02.05 |
---|---|
말(言)의 내밀성 / 권현형 (0) | 2010.02.05 |
가을 수종사 / 김명리 (0) | 2010.02.05 |
밀착(密着) / 권현형 (0) | 2010.02.05 |
집착 / 정진경 (0) | 2010.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