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수세미는 몇 장의 수세미를 품고 있을까
- 마경덕
가을 담벼락에 매달린 저 허풍쟁이, 갈수록 속이 비어 미운 놈 머리통 한 대 때려도 좋겠네. 제 몸 바람처럼 가벼운데 지나가는 처녀 뒤태에 빠져 골목 끝까지 고개가 돌아가네.
흥, 네가 수세미야. 그을린 네 속 한번 닦아봐. 주렁주렁 매달린 너를 보면 헝클어진 머리가 생각나고 양은 냄비 박박 밀던 터진 손등이 생각나고…
평생 구멍 난 그물이나 깁다가, 제 몸 숭숭한 구멍이나 세다가 어느 손이 끌어내려 가죽이나 홀랑 벗기고 말겠네. 저걸 어쩌나. 속 한번 채우지 못한 수세미. 빈 밥솥이나 닦고 말겠네. 누군가 물 먹이고 말겠네.
오줌 지린자리 볕에 말리며 수세미를 업어 키운 담벼락, 쇠불알처럼 축 늘어진 수세미를 거둔 저 넝쿨손은 오지랖 넓은 담벼락의 손이었네.
온몸에서 흘러나온 취기는 아무도 닦지 못했네. 얼룩진 아버지 문드러진 어머니를 박박 밀었네.
『문학·선』2009년 겨울호
-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신발論>문학의전당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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