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 이수명
이불을 덮고 그는 잠든다. 이불이 미끄러진다. 허공으로 손을 내밀어 그는 이불을 끌어당긴다. 이불이 저만치 미끄러진다.
그는 어둠을 향해 얼굴을 드러내고 잠든다. 이불을 끌어당기느라 팔은 길어지고 휘휘 허공을 젓는 두 손은 점점 넓어져간다.
그의 손은 방안을 꽉 채운다. 손은 천장에 가득 피어있는 해바라기를 밟는다. 해바라기는 그의 잠 밖에서 뿌리 뽑힌다. 그는 해바라기를 향해 얼굴을 드러내고 잠든다.
그는 덮는다. 해바라기를 덮는다. 천장에는 가득 해바라기가 피어 있다.
그는 그의 잠 밖에서 뿌리 뽑힌다. 그는 이불을 끌어당긴다. 이불이 자꾸만 멀리 떠밀려간다. 그도 자꾸 어디론가 떠밀려간다.
나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이불로, 그를 완전히 덮는다.
천장에는 가득 해바라기가 피어 있다.
시집『붉은 담장의 커브』민음사 2001
自序
꽃은 없고
꽃잎들이 무수히 날린다
- 1965년 서울 출생
1994년《작가세계》등단
시집<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2001년 박인환문학상 수상.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세미는 몇 장의 수세미를 품고 있을까 / 마경덕 (0) | 2009.12.22 |
---|---|
달의 아가미 / 김두안 (0) | 2009.12.21 |
책 읽는 여자 / 김희업 (0) | 2009.12.19 |
그 놋숟가락 / 최두석 (0) | 2009.12.19 |
성스러운 밤 / 조은 (0) | 2009.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