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에스프레소
- 고미경
그는 언제나 정조를 강요한다 그가 손을 뻗기도 전에 정조, 정조, 정조… 정조를 주기도문처럼 암송하면 정조는 넝쿨처럼 뻗어가며 나를 친친 감아 철사줄보다 강하게 살결을 파고 든다
그는 한 마디 행로로 나의 과거들을 정조 없는 역사로 만든다 그는 순결을 새긴 잔 하나를 앞에 놓고 정조를 암송하는 내 입술을 비튼다 선혈이 꼬리표를 달고 떨어진다 잔에 정조가 가득 찬다 아직 붉구만,(이때 그가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춰 씨발, 하고 욕을 뱉지만) 나는 치욕을 숨기며 그에게 정조를 증명하려고 애쓴다
나를 실컷 만진 후 그는 다시 욕설을 퍼부으며 나를 정조 없는 여자로 만든다 잔이 다시 텅 빈다 정조를 찾는 그가 내 입술을 비틀며 정조가 없어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우울하다고 불평한다
나는 그를 위해 정조를 가득 채우려 애쓰지만 난봉꾼 아버지의 정액만큼 불손하고 가난한 과거로 인해 정조는 채울 수 없으니 잔에 욕설만 담을 수밖에
시집『인질』문학의전당 2008
自序
당신을 생각하는 날은
여전히 밤이 붉습니다
황골에 누워있는 마흔여덟의 당신,
이 시편들을
당신 머리맡에 두고
이제 길을 갑니다
- 1964년 충남 보령 출생.온양에서 성장.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창과 졸업.
1996년『현대시학』등단.
<시비>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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