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연자차
- 박미라
살얼음 낀 방죽에서 연밥을 딴다
씨방의 껍질을 찢고
그 안의 씨앗을 다시 깨뜨려
살점을 가르면
태아처럼 웅크린 꽃눈
천천히 고요해지는 찻물을 따른다
찻잔 가득 번지는 저 색깔을 무어라 해야 하나
아득한 이 향기를 무어라 해야 하나
연잎에 구르던 빗방울이, 꽃잎에 쌓였던 달빛이,
조금씩 덜어두고 간 입김 따위로 빚어진
아직은 흑백인 우주
곰곰이 들여다보면
지금 막 초록으로 건너가려던 중인 걸 알겠다
자꾸 수그러지는 머리를 흔들며
다시 찻물을 따른다
툭툭 튼 입술을 마른 땅 밟듯 지나서
뻘밭 속으로 몸을 옮기는
내 몸의 다음 생
*연자차:연밥 속 씨앗을 가르고 그 안의 꽃눈을 꺼내어 덖은 차
시집『안개 부족』애지 2008
□ 시인의 말
여기까지 끌고 왔다
변변한 목줄도 없이 밀고 당겼다
주저앉고, 넘어지고, 날뛰어서,
나는 어금니 부서지고 너는 살점 흩어졌다
길눈 어두운 나로 하여
비루먹은 詩여!
이제 네가 나를 끌고 가라
기꺼이 떠돌겠다
깊은 봄날, 벌판에서
박미라
- 1996년《대전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서 있는 바람을 만나고 싶다>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화, 첫사랑 / 김선우 (0) | 2009.07.19 |
---|---|
에스프레소 / 고미경 (0) | 2009.07.18 |
수런거리는 뒤란 / 문태준 (0) | 2009.07.17 |
참새에 대하여 / 박현수 (0) | 2009.07.17 |
대관령 옛길 / 김선우 (0) | 2009.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