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수런거리는 뒤란 / 문태준

폴래폴래 2009. 7. 17. 22:27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수런거리는 뒤란

 

                                                       - 문태준 

 

 

 

 山竹 사이에 앉아 장닭이 웁니다

 

 묵은 독에서 흘러나오는 그 소리 애처롭습니다

 

 구들장 같은 구름들은 이 저녁 족보만큼 길고 두텁습니다

 

 누가 바람을 빚어낼까요

 

 서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산죽의 뒷머리를 긁습니다

 

 산죽도 내 마음도 소란해졌습니다

 

 바람이 잦으면 산죽도 사람처럼 둥글게 등이 굽어질까요

 

 어둠이, 흔들리는 댓잎 뒤꿈치에 별을 하나 박아주었습니다

 

 

 

 

 

                         시집『수런거리는 뒤란』창비 2000

 

 

 

 

                    시인의 말

 

 

     시골집 뒤란엘 가면 심지를 잃고 모로 누운 초롱을 보는데, 그

   때마다 마음이 아슬하다. 삶이라는 게 원체 모로 서 있는 것인지

   는 모르되, 그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은 고통스러웠다.

     장마 지나고 나서 눅눅한 것을 내어다 말리는 일을 거풍(擧風)

   이라 하는데, ‘바람을 들어올린다’는 그 말의 여울을 빌려 일흔

   다섯 편의 시를 세상에 내놓는다. 바람을 들어올려 가슴속에 남아

   있던 무거리를 마저 체질할 수 있다면, 그래서 흰 광목 몇 마처럼

   마음자리가 환해졌으면 좋겠다. 가늘고 가벼운 다리로 수면을 횡

   단하는 소금쟁이처럼.

     쉴새없이 바람에 흔들렸던 가족 모두에게 미욱한 첫시집을 바

   친다.

 

                                                         2000년 3월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고대 국문과 졸업

                 199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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