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물
- 천수호
감물이라는
잘 지워지지 않는 지명이 있다
슬쩍 스친 지명이지만
가슴엔 한 점 얼룩이 돋아
도톨하게 만져진다
떫은, 목메는 감물 흔적이다
일찍 떠난 내 큰언니의 초경 자국,
한 방울 남짓 떨구고 간
그 댕기 머리 뒷모습을
나 또한 엄마처럼 못다 배웅했는지
삼십 년 넘도록 지우지 못한다
방금
내 몸을 스쳐 간 지명이여
언니라는 혈흔의 감물, 나폴거리는
저 생생한
댕기, 댕기 물감
시집『아주 붉은 현기증』2009.민음사
自序
폐교 운동장 구석,
서녘 하늘로 기운 태양에 아직 달아 있는 몽돌 하나
어디에서 와서 그 어색한 자리에 앉아 있는 걸까
홀로 품으려 애쓰는 자리, 혼자 바다를 그리워하는 자리
내게 시는 연민에서 출발한 사물 이해법
그것이 사물을 보게 한, 또는 보이게 한 시력이다
내 시 속에 늘 오도카니 있는 존재들,
그 외딴 것들이 느끼는
아주 붉은 현기증
2009년 3월
천수호
1964년 경북 경산 출생. 계명대 문창과
명지대 박사과정 수료.
2003년『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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