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시간들 / 안현미

폴래폴래 2009. 6. 17. 00:00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시간들

 

                                            - 안현미

 

 

  침묵에 대하여 묻는 아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침묵이다

  시간에 대하여도 그렇다

 

  태백산으로 말라 죽은 나무들을 보러 갔던 여름이 있었지요

 

  그때 앞서 걷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당신만큼 나이가 들면 나도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그 나이만큼 되어 시간은 내게 당신 같은 사람이 되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어 말라 죽은 나무 옆에서 말라 죽어가는 나무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안개를 부려놓았고 열입곱 걸음을 걸어가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따라갔으나 나의 시간은 그곳에 당도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여름안개 같은 당신은, 당신에 대하여 묻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인 당신을 침묵과 함께 놓아두고 말라가는 시간

 

  열일곱 걸음을 더 걸어와 다시 말라 죽은 나무들을 보러 태백에 왔습니다

 

  한때 간곡하게 나이기를 바랐던 사랑은 인간의 일이었지만 그 사랑이 죽어서도 나무인 것은 시간들의 일이었습니다

 

 

 

 

 

             - 1972년 강원 태백 출생.

                2001년『문학동네』등단

                시집<곰곰>렌덤하우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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