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고양이 / 송찬호

폴래폴래 2009. 6. 13. 19:22

 

 

 

 

 

 

 

           고양이 

 

                                               - 송찬호

 

 

 여기 경매에 내놓으려 하는 오래된 꽃병이 있어요

 꺾은 꽃가지에서 비린내가 나지 않으면 이제 그런건 거들떠보지도 않네요

 그러니 누가 저 꽃병목에 방울을 달겠어요?

 

 쉬잇, 지금은 고양이 철학 시간이에요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모서리 구멍을 응시하고 있네요

 아마 지금은 사라져버린 사냥 시대를 생각하고 있겠지요

 우리는 모두 어둠과 추위로부터 쫓겨온 무리랍니다

 

 한때는 방 안을 뒹굴던 털실 몽상가와 잘도 놀았답니다

 현기증 나는 속도의 바퀴와 아찔한 연애도 해봤구요

 요즘은 부쩍 네발 달린 것에 믿음이 가는가 봐요

 네발 달린 의자에 사뿐히 뛰어 올라 털실이 떠나간

 털실 바구니에 들어가 때때로 달콤한 오수를 즐기지요

 

 앗,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방 안 모서리, 손거울, 집 열쇠, 어항의 물고기가 사라지고 없어요

 다그쳐 물어도 종알종알 털만 핥을 뿐 모른다 도리질만 하네요

 쫑긋 귀 동그란 눈동자……, 그토록 짧은 혀로 그것들 모두 어디다 숨겼을까요

 

 

 

 

          시집「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2009문지.

 

 

 

 

            -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 독문과 졸업.

               1987년「우리 시대의 문학」등단.

               동서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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