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出土
- 나희덕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춧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가을갈이를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 데간데 없다
불꽃도 흙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
자세히 드여다보니
그녀는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
관두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한 웅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 同 대학원 박사.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재 조선대 문창과 교수.
'文學의 오솔길 > 시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명자꽃 / 임보 (0) | 2009.06.14 |
|---|---|
| 고양이 / 송찬호 (0) | 2009.06.13 |
| 나비 / 송찬호 (0) | 2009.06.10 |
| 아버지의 안전벨트 / 고영 (0) | 2009.06.10 |
| 마지막 술집을 찾아서 / 문동만 (0) | 2009.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