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불안으로부터의 離巢 / 한석호

폴래폴래 2009. 4. 23. 12:46

 

 

 

 

                                                           사진:네이버포토 

 

 

 

   불안으로부터의 離巢     / 한석호

 

 

 

 잠자는 침묵을 깨워 내 보낸 모텔의 흐린 창을 열고

 어둠이 살며시 내 곁에 들어와 눕는다.

 종일 선창을 흔들던 바람소리와

 그 바람 거슬려 나아가던 파도는

 지금쯤 어느 바다로 가고 있을까 나의 시야에

 수런대던 근심 하나가 솜털을 날리며

 팽팽한 방안의 정적을 가라앉힌다.

 이럴 땐 잠이 모두를

 아주 먼 곳으로 데려가 주었으면 하는

 가느다란 희망을 깊게 품어보는 데

 흐릿한 집어등 하나가

 내 골다공증의 삶 위에 걸터앉는다.

 내 가슴을 끌어 당겨 덮는 바람을

 뼈 속에 집어넣는다.

 여기 서울장 408호,

 시린 무릎을 추억하고자 찾는 사람들 묵는 곳에는

 또 하나의 등불 걸어두게 되는 셈이다.

 그 등불 밝아 바닷길 화안하게 열리는 곳에

 그 바다의 가장 푸른 물빛을 내려놓고

 주름진 내면을 가만히 비춰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반사되는 불면의 시간위에

 나는 보내야 할 것과 지워야할 것들의 목록을 부표처럼 띄워놓고

 심지에 불을 붙인다 부채질한다.

 잠은 침묵의 바다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바다는 잠의 하늘에서 차갑게 반짝이고 있다.

 나는 문을 열고 훌쩍 키가 자란 등불을 밖으로 던져버린다

 눅눅한 비망록을 길 위에 펼쳐놓고

 뼈 속까지 파고드는 바람에 온 몸 내어 맡긴다.

 그런 불안으로부터의 이소를 나는 꿈꾼다.

 

 

 

 

 

             - 경남 산청 출생.

                2007년 문학사상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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