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아욱국 / 김선우

폴래폴래 2009. 3. 5. 20:30

 

 

 

 

 

 

 

                   아욱국           / 김선우 

 

 

 아욱을 치대어 빨다가 문득 내가 묻는다

 몸속에 이토록 챙챙한 거품의 씨앗을 가진

 시푸른 아욱의 육즙 때문에

 

 ─엄마, 오르가슴 느껴본 적 있어?

 ─오, 가슴이 뭐냐?

 아욱을 빨다가 내 가슴이 활짝 벌어진다

 언제부터 아욱을 씨 뿌려 길러 먹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으응, 그거! 그, 오, 가슴!

 자글자글한 늙은 여자 아욱꽃빛 스민 연분홍으로 웃으시고

 

 나는 아욱을 빠네

 시푸르게 넓적한 풀밭 같은 풀잎을

 생으로나 그저 데쳐 먹는 게 아니라

 이남박에 퍽퍽 치대어 빨아

 국 끓여 먹을 줄 안 최초의 손을 생각하네

 

 그 손이 짚어준 저녁의 이마에

 가난과 슬픔의 신열이 있었다면

 그보다 더 멀리 간 뻘밭까지를 들쳐 업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푸르른 관능의 힘,

 사랑이 아니라면 오늘이 어떻게 목숨의 벽을 넘겠나

 치대지는 아욱 풀잎 온몸으로 푸른 거품

 끓이는 걸 바라보네

 

 치댈수록 깊어지는

 이글거리는 풀잎의 뼈

 오르가슴의 힘으로 한 상 그득한 풀밭을 차리고

 슬픔이 커서 등이 넓어진 내 연인과

 어린것들 불러 모아 살진 살점 떠먹이는

 아욱국 끓는 저녁이네 오, 가슴 환한.

 

 

 

 

                     -1970년 강릉 출생, 1996년 '창작과비평'등단.

                       2004년 현대문학상 수상. '시힘'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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