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폴래폴래 2009. 3. 2. 07:03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 잎 몇 장 더 얹어 뒤란

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 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 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 1942년 부산출생. 1965년 박두진 추천'현대문학'등단.

                    1966년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96년 소월시문학상,

                    1998년 현대문학상, 2005년 공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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