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의 여자 / 김정란
오늘 저녁엔 한번 찬찬히 살펴 보시길
봄비 스스로 내리는 저녁무렵
혹시 당신 양복 뒷단을
희고 찬 낯선 손이 몰래 다가와
살며시 잡아당기지는 않는지
혹시 당신 아파트 문 위에
손톱자욱이 나 있지는 않은지
자동 응답기에 숨죽인 흐느낌이
녹음되어 있지는 않은지
당신이 시내로 들어가는 전철을 기다리면서
일간지에 코를 박고 있는 동안, 그리곤
불밝은 전동차 안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들어가는 동안,
혹시, 건너편, 시외로 빠져나가는 플랫폼
어두운 한 구석에 숨어서 한 여자가 당신을
막막히 애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그녀가 가슴을 불어가는 바람을 견디느라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고 있지는 않은지
당신이, 문밖으로 쫓아버린 여자
당신이,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 잊어버린 여자
그 여자, 당신의 일상이 잊어버린, 그러나
어쩌면 당신의 영혼이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
건너편의 여자
- 1953년 서울 출생. 외국어대 불문과 및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원.
1976년 '현대문학' . 소월시문학상 수상. 현재 상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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