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나무엔 빈방이 많다 / 이정록
목련꽃 환한
낡은 기와집
나무대문 앞에
弔燈이 걸려 있다
할아버지가 숨을 놓자
혼자 살던 집에 사람 북적인다
저렇게
食口가 많았던가
가까이 다가서니
언제부터 펄럭였나
빛바랜 달력 한 장
빈방 잇슴
보이라 절절 끄름
목련나무의 빈방 안에서
哭소리 새어 나온다
건을 벗어
問喪하는 목련꽃 이파리들
햇살의 經文 / 이정록
날고 싶은 것들이 죽어 흙이 되면 기왓장으로 태어난다
절마당 가득한 저 기왓장들은 곧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새를 꿈꾸던 영혼의 깃털마다 가족 이름과 골목길 복잡한 주소들이 적혀 있다 커다란 새 한 마리가 갈비뼈 뒤편에 업장을 서려 물고 있는 것이다
날고 싶던 것들의 극락왕생에 낙서하지 마라 목어처럼 텅 빈 새의 뱃속에 알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법당문이나 환하게 열어젖혀라 그리하여 그 새 똥구멍으로 들이치는 찬란한 햇살에 눈이나 부비거라
비 그친 뒤 / 이정록
안마당을 두드리고 소나기 지나가자 놀란 지렁이 몇마리 서둘러 기어간다 방금 알을 낳은 암닭이 성큼성큼 뛰어와 지렁이를 삼키고선 연필 다듬듯 부리를 문지른다
천둥 번개에 비틀거리던 하늘이 그 부리 끝을 중심으로 수평을 잡는다 개구리 한 마리 안마당에 패대기친 수탉이 활개치며 울어 제끼자 울 밑 봉숭아며 물앵두 이파리가 빗방울을 내려놓는다 병아리들이 엄마 아빠 섞어 부르며 키질 위 메주콩처럼 몰려다닌다
모낸 무논의 물상이 파르라니 떨린다 온몸에 초록침을 맞은 하늘이 파랗게 질려 있다 침 놓은 자리로 엄살엄살 구름 몇이 다가간다 개구리 똥꼬가 알 낳느라고 참 간지러었겠다 암닭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논쪽을 내다본다
-1964년 충남 홍성 출생.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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