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목련나무엔 빈방이 많다 /이정록 시보기

폴래폴래 2009. 2. 3. 15:02

 

 

 

 

 

 

 

           목련나무엔 빈방이 많다          / 이정록 

 

 

 

목련꽃 환한

낡은 기와집

 

나무대문 앞에

弔燈이 걸려 있다

 

할아버지가 숨을 놓자

혼자 살던 집에 사람 북적인다

 

저렇게

食口가 많았던가

 

가까이 다가서니

언제부터 펄럭였나

빛바랜 달력 한 장

 

        빈방 잇슴

       보이라 절절 끄름

 

목련나무의 빈방 안에서

哭소리 새어 나온다

 

건을 벗어

問喪하는 목련꽃 이파리들

 

 

 

 

           

       햇살의 經文           / 이정록

 

 

 날고 싶은 것들이 죽어 흙이 되면 기왓장으로 태어난다

 절마당 가득한 저 기왓장들은 곧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새를 꿈꾸던 영혼의 깃털마다 가족 이름과 골목길 복잡한 주소들이 적혀 있다 커다란 새 한 마리가 갈비뼈 뒤편에 업장을 서려 물고 있는 것이다

 날고 싶던 것들의 극락왕생에 낙서하지 마라 목어처럼 텅 빈 새의 뱃속에 알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법당문이나 환하게 열어젖혀라 그리하여 그 새 똥구멍으로 들이치는 찬란한 햇살에 눈이나 부비거라

 

 

 

 

       비 그친 뒤         / 이정록

 

 

 

 안마당을 두드리고 소나기 지나가자 놀란 지렁이 몇마리 서둘러 기어간다 방금 알을 낳은 암닭이 성큼성큼 뛰어와 지렁이를 삼키고선 연필 다듬듯 부리를 문지른다

 

 천둥 번개에 비틀거리던 하늘이 그 부리 끝을 중심으로 수평을 잡는다 개구리 한 마리 안마당에 패대기친 수탉이 활개치며 울어 제끼자 울 밑 봉숭아며 물앵두 이파리가 빗방울을 내려놓는다 병아리들이 엄마 아빠 섞어 부르며 키질 위 메주콩처럼 몰려다닌다

 

 모낸 무논의 물상이 파르라니 떨린다 온몸에 초록침을 맞은 하늘이 파랗게 질려 있다 침 놓은 자리로 엄살엄살 구름 몇이 다가간다 개구리 똥꼬가 알 낳느라고 참 간지러었겠다 암닭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논쪽을 내다본다 

 

 

 

 

                     -1964년 충남 홍성 출생.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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