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낡은 침대 / 박해람

폴래폴래 2009. 2. 2. 20:50

 

 

 

 

                                   사진출처:네이버포토갤러리 

 

 

 

          낡은 침대          / 박해람

 

 

모든 힘이 빠진 한 사내가 후줄근하게 돌아와

꽤 오래되고 낡은 충전기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몸에 딱 맞는 배터리

푹신하고 깊은 잠이 넘쳐나는 낡은 침대 안으로

안경을 벗고 조용히

그의 관절들이 혁대를 풀고 잠든다.

얇은 모기장과, 빛의 속도로 몇억 광년쯤 날라 온듯한 낮은 스텐드불빛.

그러고 보니 저 낡은 침대와 연결된 코드는

대기권 밖인지도 모른다.

 

몇 번의 뒤척임으로 사내는 온 몸에

잠을 골고루 바른다.

신선하고 맑은 힘이 온몸으로 퍼진다.

지지직거리는 몇 마디의 잠꼬대가 몸밖으로 버려지고

꿈과 꿈들 사이에 부드럽고 말랑한 연골이 채워진다.

피로와 힘겨움 같은 것들을 밤새 먹어치우는 거대한 짐승.

결국, 저 사내도 언젠가는 저 침대의 먹이가 될 것이다.

간혹, 삐걱 이며 새어나오는 전류

버려진 꿈들의 폐기장

산더미처럼 쌓인 저 권태와 피곤함이 베어있는 덩어리.

점점 충전 속도가 떨어져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저 사내

어쩔 수 없이 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 가는 저 사내.

 

 

 

 

             - 1998년 '문학사상'등단.

               2006년 시집<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