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네이버포토갤러리
낡은 침대 / 박해람
모든 힘이 빠진 한 사내가 후줄근하게 돌아와
꽤 오래되고 낡은 충전기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몸에 딱 맞는 배터리
푹신하고 깊은 잠이 넘쳐나는 낡은 침대 안으로
안경을 벗고 조용히
그의 관절들이 혁대를 풀고 잠든다.
얇은 모기장과, 빛의 속도로 몇억 광년쯤 날라 온듯한 낮은 스텐드불빛.
그러고 보니 저 낡은 침대와 연결된 코드는
대기권 밖인지도 모른다.
몇 번의 뒤척임으로 사내는 온 몸에
잠을 골고루 바른다.
신선하고 맑은 힘이 온몸으로 퍼진다.
지지직거리는 몇 마디의 잠꼬대가 몸밖으로 버려지고
꿈과 꿈들 사이에 부드럽고 말랑한 연골이 채워진다.
피로와 힘겨움 같은 것들을 밤새 먹어치우는 거대한 짐승.
결국, 저 사내도 언젠가는 저 침대의 먹이가 될 것이다.
간혹, 삐걱 이며 새어나오는 전류
버려진 꿈들의 폐기장
산더미처럼 쌓인 저 권태와 피곤함이 베어있는 덩어리.
점점 충전 속도가 떨어져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저 사내
어쩔 수 없이 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 가는 저 사내.
- 1998년 '문학사상'등단.
2006년 시집<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목련나무엔 빈방이 많다 /이정록 시보기 (0) | 2009.02.03 |
|---|---|
| 폐차장으로 / 최재영 (0) | 2009.02.03 |
| 숲 / 이영광 (0) | 2009.02.02 |
| 냉이의 꽃말 / 김승해 (0) | 2009.02.01 |
| 저녁 풀밭에 누우면 / 정복여(정영희) (0) | 2009.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