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새 발자국 고수레 / 이형기

폴래폴래 2009. 1. 28. 22:59

 

 

 

 

 

 

 

              새 발자국 고수레   / 이형기 

 

 

 

     내 죽거들랑 무덤을 짓지 말라

     하물며 돌에 문자를 새긴 묘비일까 보냐

     그냥 불에 태운 뼛가루 두어 줌

     강가에 뿌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나는

     원래의 내 자리

     실은 누구나 게서 온 그 자리

     텅 빈 가이없는 허공으로

     깨끗한 잊혀짐의 길 떠나갈 것이다

 

     비오는 날이면

     추적대는 빗줄기

     휴우휴우 바람 부는 밤이면

     불어대는 그 바람으로 날려서

 

     공중에 무수하게 찍혀 있는

     새의 발자국 그것이나 주워서

     가는 길 하늘에 고수레하고

     기꺼이 사라질 것이다

 

     무엇이든 마지막엔 드러나는 바탕

     아무것도 없음이여

     억조(億兆)의 죽음을 삼키고도 예전 그대로

     없음만이 찰랑대는 그곳 허무의 집으로

     나는 선선히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