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자미화 그늘

폴래폴래 2021. 7. 1. 10:04

자미화 그늘

 

                       유현숙

 

 비는 기별 없이 와서 가까운 바다를 두들겼다

 바닷가 절집이 물에 잠겨 있다

 첨벙대며 마당을 가로질러 물 고인 돌계단을 딛는

 발아래가 염화다

 문득 비 그치고

 꽃잎 붉게 지는 동안

 하루가 저물고 절집이 고요하다

 자미화 그늘도 본래로 돌아가 누웠다

 

 은빛소리라든가 눈엽이든가 수첩에 적어 두었던 낱말들이

 고요 속에서 낱낱이 눈 뜬다

 

 미혹의 그늘에서 이만큼까지 몹시

 잠기고 매듭진 자리에서 저만큼까지 몹시

 마음이 들고난 자리에서 이만큼까지 몹시

 지난 하루가 감감해지는 저만큼까지 몹시

 

 절집에 저녁이 오고 어둠이 들고 가섭은 가고

 떨어져 뒹구는 저 꽃빛 닿지 않은 기별인가

 

 시집<몹시> 상상인 2021

 

 2001 동양일보, 2003년 문학.선 으로 등단

 시집<서해와 동침하다><외치의 혀>

 제10회 미네르바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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