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눈 뜨기
강인한
내 나이 여섯 살이며, 이리세무서장 관사에서의 일입니다.
작은 연못 가슴에 품은 정원이 있고
정원에서 대문 쪽으로는 시멘트 담벼락이 이웃집
계집애의 보조개와 한길의 경사를 비스듬히 부축하고 있었지요.
흙을 갈아엎은 밭이 한길까지 얼씨구절씨구 흥에 겨워서
관사 내부와 밖의 소문, 봄과 꿈의 경계에 선
측백나무를 참새 소리들이 지지고 볶고 꼬득이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비좁은 가지와 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간절한 세상 풍경이
거리의 소란과 어우러져
우리 집으로 들어오려고 안달복달할 적이면
가만히 발걸음을 숨긴 채 나는 측백나무 울타리 쪽에
이따금 눈길을 묻곤 하였는데요.
어느 날은 흰옷 입은 사내가 나타나 쪼그리고 엎드린 내 눈앞에
막무가내로 들이대며 바지춤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낯선 사내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바지를 까고 힘차게 내쏘는 물줄기를 조마조마 지켜보는데
내 생전 그렇게 커다랗고 거무칙칙한 물건을
본 적 없어 무척 놀랐습니다.
눈을 뜬 채 한순간 숨을 쉴 수도 없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그 사내의 검고 길쭉한 것처럼 생긴 방망이들을
높은 하늘에서 몇 개씩이나 떨어뜨리고 가는 비행기를
하루에도 두세 번씩 보았습니다.
이후로 우리 식구들은 손마다 보따리를 들고서
측백나무 울타리에 내 가오리연도 걸려있는 관사를 떠났습니다.
그건 단기 사천이백팔십삼년 여름의 시작이었지요.
물에 잘 녹는 슬픔은 그렇게 시작되었지요.
『발견』2020년 봄호
1944년 정읍 출생.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불꽃>
<전라도 시인><입술><강변북로><튤립이 보내온 것들> 등.
전남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시와시학 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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