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꽃 지던 아버지의 방
이승예
그의 습관은
왼쪽으로 누워 잠드는 것
문 밖 모과나무에 바람이 차다
저물도록 땅 파는 일을 하다가
그가 땅이 되던 해
모과는 땅보다 진한 향기를 풍겼다
아버지의 방에
귀를 대고 가만히 눕는다 바닥은 고요한데
온몸으로 아버지를 읽어내느라 숨이 막혀온다
해소를 앓던 아버지의 목구멍에 달 닮은 구멍
밤이 새도록 그곳에선 부엉이가 울어대고
꽃잎을 붉게 물들이느라 모과나무는 멍들어 갔다
땅 저편에서 누군가 밤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처마에 걸어 둔 풍경소리처럼
방바닥에서 심장소리가 들린다
뒤척이는 왼쪽,
달빛 쪽으로 기울어 가는 모과나무 가지가
오른쪽을 그리워 하는가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달을 흔든다
곧, 모과 꽃이 피겠구나
『발견』2020년 봄호
1963년 순천 출생. 2015년<발견>으로 등단.
시집<나이스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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