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모과 꽃 지던 아버지의 방 / 이승예

폴래폴래 2020. 3. 29. 16:20

 

 

   모과 꽃 지던 아버지의 방

 

                               이승예

 

 

 그의 습관은

 왼쪽으로 누워 잠드는 것

 

 문 밖 모과나무에 바람이 차다

 

 저물도록 땅 파는 일을 하다가

 그가 땅이 되던 해

 모과는 땅보다 진한 향기를 풍겼다

 

 아버지의 방에

 귀를 대고 가만히 눕는다 바닥은 고요한데

 온몸으로 아버지를 읽어내느라 숨이 막혀온다

 

 해소를 앓던 아버지의 목구멍에 달 닮은 구멍

 밤이 새도록 그곳에선 부엉이가 울어대고

 꽃잎을 붉게 물들이느라 모과나무는 멍들어 갔다

 

 땅 저편에서 누군가 밤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처마에 걸어 둔 풍경소리처럼

 방바닥에서 심장소리가 들린다

 

 뒤척이는 왼쪽,

 달빛 쪽으로 기울어 가는 모과나무 가지가

 오른쪽을 그리워 하는가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달을 흔든다

 

 곧, 모과 꽃이 피겠구나

 

 

 

『발견』2020년 봄호

 

 

 1963년 순천 출생. 2015년<발견>으로 등단.

 시집<나이스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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