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매화, 풀리다
이은규
겨울의 뒷모습과 매듭을 잊은 시간으로부터
나는 오늘 상춘객, 꽃 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아직 차가운 손끝 혼자의 나들이 물어물어 찾아간 청매홍매야 내 마음 들리니 목소리가 들리니 봄의 입김으로 풀리는 살갗이 환하게 아프겠다, 아프지 않겠다
누군가 날 생각하면 신발 끈이 풀린다는 말
눈 뜨면 아프기도
눈 감으면 아프지 않기도 하니까
매일매일 멀리서 가까이서
오래 꿈꾸던 문장을 우리 이제 매듭짓기로 하자
청실홍실의 상상력, 몹쓸
한 발 한 발
저 매화를 다 걸어야 하는데
오늘따라 신발 끈이 자주 풀리는 이유
누군가의 생각을 짐작하겠다, 짐작하지 못하겠다
먼 곳에 닿을 꽃과 안부
언젠가 대신 신발 끈을 매주며 함께 있는데도 물릴 만큼 좋아, 묻고 답하던 날 마지막 꽃에 귀 기울이면 그날의 목소리 돌아올 거라 믿습니다 모든 나무에게 꽃이 그렇듯 함부로 피는 사랑이란 없다 잘못 매듭지어진 시간이 있을 뿐
단단한 다짐이 필요해
기억이 저무는 사이 서성이는 상춘객
주머니 속 숨겨놓은 꽃향기
한 사람에게 닿을 텐데, 닿을 것만 같은데
시집『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1978년 서울 출생.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다정한 호칭><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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