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브포토 지나님.
가로세로높이를 가진 메모
-최호빈
이따금 어디서 잠든 지 모르는 당신이
냉장고 문 앞에 발을 붙이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싱크대 아래에
세탁기와 건조대 사이에
행운목의 잎 하나하나에 순서대로,
그리고
정오의 그림자에
이미 작아질 대로 작아진 발을 붙인다
뜨거운 커피가 담긴 컵에 캐러멜 와플을 하나 올려놓는다
갈수록 느리게 가는 오후
집 안을 돌아다니며
가로와 세로와 높이를 가진 발에 관한 지식을 채우며 당신이
한참
돌아오지 않는다
좁힐 수 없는
두 발 사이의 거리에서
당신보다 긴 그림자를 만날 때까지
발만 남겨둔 채
당신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식은 밥과 야채를 조금 먹고
오늘도 당신은 발만 내놓고 잔다
당신의 발엔 꿈이 없는 것처럼
이불 밖으로 발을 밀어내며 잔다
집 안에 붙여둔 발들을 몰래 떼어내려고
당신이 자꾸 투명해지려고 한다
<시인동네>2017년 7월호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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