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가로세로높이를 가진 메모 / 최호빈

폴래폴래 2017. 11. 1. 14:21



                  사진:네이브포토 지나님.



     가로세로높이를 가진 메모



                                               -최호빈


 이따금 어디서 잠든 지 모르는 당신이

 냉장고 문 앞에 발을 붙이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싱크대 아래에

 세탁기와 건조대 사이에

 행운목의 잎 하나하나에 순서대로,

 그리고

 정오의 그림자에

 이미 작아질 대로 작아진 발을 붙인다


 뜨거운 커피가 담긴 컵에 캐러멜 와플을 하나 올려놓는다


 갈수록 느리게 가는 오후


 집 안을 돌아다니며

 가로와 세로와 높이를 가진 발에 관한 지식을 채우며 당신이

 한참

 돌아오지 않는다


 좁힐 수 없는

 두 발 사이의 거리에서

 당신보다 긴 그림자를 만날 때까지

 발만 남겨둔 채

 당신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식은 밥과 야채를 조금 먹고

 오늘도 당신은 발만 내놓고 잔다


 당신의 발엔 꿈이 없는 것처럼

 이불 밖으로 발을 밀어내며 잔다


 집 안에 붙여둔 발들을 몰래 떼어내려고

 당신이 자꾸 투명해지려고 한다



 <시인동네>2017년 7월호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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